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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감정이 알려주는 것들> 에스더 힉스 & 제리 힉스

by magmag 2026.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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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알려주는 것들 - 300 페이지짜리 '렛잇고'


에스더 힉스와 제리 힉스 부부가 전하는 '에이브러햄'의 가르침.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미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비물질적 존재의 집합체가 한 여성의 입을 빌려 우주의 진리를 전한다니, 어떤 독자는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고, 어떤 독자는 책을 덮을 것이다. 나는 어찌 되었든 끝까지 읽었고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 책의 핵심은 세 음절, 또는 세 마디로 요약된다.

Let it go
(렛잇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가 이미 13년 전 노래로 다 전해준 이야기다. 차이가 있다면 엘사는 3분 만에 끝냈고, 이 책은 300 페이지에 걸쳐 서술했다는 것뿐이다.



엘사 vs. 에이브러햄 힉스

<감정이 알려주는 것들(The Astonishing Power of Emotions)>은 2007년에 출간된 에이브러햄 힉스 시리즈의 한 권이다.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을 기반으로, 감정이 일종의 내면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기분이 좋으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기분이 나쁘면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고 한다. 핵심 처방은 다음과 같다.

지금 느끼는 감정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생각을 찾아라. 그것을 반복하라. 그러면 감정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조금씩 방향을 바꾸라는 메시지 자체는 심리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저자가 직접 쓴 내용이 70페이지 남짓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알맹이는 사실 얇은 팸플릿 한 권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3부 후반부를 가득 채운 32가지 사례다. 인간관계, 건강, 돈, 직장 등, 시나리오는 다양하지만 해법은 매번 같다. 나쁜 감정을 인정하라, 조금 나은 생각을 찾아라, 놓아버려라. 렛잇고. 또 렛잇고. 처음 두세 개는 흥미롭다. 그런데 네다섯 번째쯤 되면 패턴이 보이고, 열 번째쯤 되면 눈이 감긴다. 솔직히 말하면, 책은 출판해야겠는데 분량이 모자라서 꾸역꾸역 페이지를 늘린 듯한 느낌이었다.

<겨울왕국>에서 엘사는 평생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고 억눌러왔다. 그러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며 산꼭대기에 얼음 성을 짓는다. 바로 '렛잇고'의 순간이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엘사의 렛잇고는 해방인 동시에 도피다. 엘사는 그 후 사람들과 문제를 직접 마주하며 진짜 성장하고 본인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겨울왕국>조차 렛잇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모르는 것 같다.
 

판단의 노를 놓으라?

이 책이 즐겨 쓰는 비유가 있다. 강물 위의 뗏목. 당신은 노를 저으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부정적 감정의 상태다.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럽다. 해법은? 노를 놓아라. 그러면 뗏목은 자연스럽게 하류로 흘러가고, 당신은 편안해진다. 감정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 흐름을 따르라는 말은 수긍이 간다. 순풍에 돛을 올리는 것이니까. 그런데 기분이 나쁠 때 노를 놓으라고? 잠깐. 내가 지금 떠 있는 이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기는 하는가? 저 앞 굽이를 돌면 잔잔한 호수가 나올 수도 있지만, 절벽 끝 폭포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노를 놓은 채 흐름에 몸을 맡겼더니 나이아가라였다면, 그때 가서 '기분 좋은 생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라면 노를 놓지 말고, 강에서 나오라고 말하겠다. 강가에 배를 대고, 잠시 앉아 쉬라고 하겠다.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고, 강의 흐름을 밖에서 바라보라고 하겠다. 그리고 충분히 쉬었을 때, 다시 탈 것인지, 다른 길을 걸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고 싶다. 흐름에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서서 방향을 정하는 것이 진짜 주체적인 삶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은 외부 현실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면의 감정을 조율하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지혜로운 조언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것이 극단으로 가면 위험해진다. 부당한 상황에서도 '내 감정만 바꾸면 된다'는 논리는 자칫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할 때 기분 좋은 생각을 찾으라는 조언은 무책임할 수 있다. 내면의 평화와 현실에 대한 책임은 양립해야 하지만 이 책에는 그 균형이 없어 보인다.

에이브러햄이라는 존재의 권위에 기대는 서술 방식도 불편하다. '우리 에이브러햄은 이렇게 말합니다'라는 프레이밍은 메시지를 검증 불가능한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동의하면 깨달음이고, 동의하지 않으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 된다. 이런 구조는 건강한 비판적 사고를 어렵게 만든다.
 

노래나 한번 더 듣자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감정에 휘둘려 지쳐 있는 사람, 모든 것을 통제하려다 탈진한 사람에게 '조금 놓아줘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필요한 순간이 있다. 문제는 이 책이 그 메시지를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만능열쇠처럼 제시한다는 것이다. 만능열쇠는 없다. 있다면, 300페이지짜리 책이 아니라 3분짜리 노래면 충분할 것이다.
 

Let i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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