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생각보다 뜻밖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뇌과학이라는 주제는 늘 흥미롭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전문 용어와 실험 데이터에 막히기 일쑤다. 그래서 뇌과학을 쉽게 풀어쓴 책이 나오면 반갑게 집어 드는 편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도 그런 기대로 읽기 시작했다. 원제가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인 만큼 7.5개의 짧은 강의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힐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정동, 사회적 실재 같은 개념이 등장하면서 속도가 느려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뇌에 대한 기존 상식을 뒤집는 흥미로운 관점으로 가득했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관리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0.5강의 전제부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삼위일체 뇌 이론, 즉 파충류의 뇌 위에 포유류의 뇌, 그 위에 인간의 뇌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익숙한 상식이 사실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 7.5개의 강의 가운데 특히 두 개의 강의가 오래 남았다.

아이의 뇌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3강 '어린 뇌는 스스로 세계와 연결된다'는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이었다. 저자는 1960년대 루마니아의 고아원 사례를 소개한다. 당시 고아원의 아기들은 자극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거의 없는 유아용 침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눈을 맞춰주는 사람도,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적 장애를 입은 채 성장했다. 사회적 입력 자극이 심하게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뇌는 평균보다 작게 발달했다는 연구 결과는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뇌는 유전자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선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피부를 만져주는 경험이 뇌의 물리적 크기까지 바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산 후 바로 업무에 복귀하느라 아이의 일관된 양육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물론 루마니아 고아원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섬세하게 돌보는 일관된 양육자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유사한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안타까움과 반성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아이의 뇌 발달에 보호자의 역할이 이토록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장이었다.
정동이라는 낯선 단어 앞에서
6강 '인간의 뇌는 다양한 종류의 마음을 만든다'에서는 '정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그것을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관계없이 항상 정동을 만들어낸다." (p.154)
솔직히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았다. 우선 정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봤다. 영어로 affect라고 한다지만 이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네이버 사전에서 정동을 검색하면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나온다. 책에서는 감정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전에서는 강렬한 감정 상태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문장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뇌는 매 순간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요약하고, 우리는 그 요약을 정동으로 느낀다는 설명이었다. 감정처럼 특정한 이름이 붙는 것이 아니라, 유쾌하거나 불쾌하고,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기본적인 느낌의 층위라고 이해했다. 기쁨이나 슬픔처럼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 이전에, 몸 전체가 보내는 막연한 신호 같은 것이다.
번역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차라리 affect를 음차 하여 어펙트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면 혼란이 줄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동이라는 한자어가 이미 감정이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어서, 저자가 의도한 감정 이전의 신체적 느낌이라는 의미가 번역 과정에서 흐려진 것 같았다. 이런 부분은 번역의 한계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뇌과학이 건네는 언어
이 책은 200쪽 남짓한 분량이지만 곱씹을 내용이 많아 한 번에 읽기보다 한 강씩 천천히 소화하기를 권한다. 쉬운 책을 기대했지만 결국 여러 번 되짚어 읽게 되었고,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의 가치였다. 뇌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싶은 사람, 육아와 뇌 발달의 연결고리가 궁금한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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